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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격을 받았고, 공은 완전히 제해권을 장악하게 되었던 것이다.7 덧글 0 | 조회 190 | 2021-06-07 22:29:19
최동민  
타격을 받았고, 공은 완전히 제해권을 장악하게 되었던 것이다.7월, 명나라 수군(도독은 진 린)과 연합 함대 결성함.수사로 하여금 목을 베고 보고하도록 했다.50근을 보냈다.충청 수사와 활 10순을 쏘았다. 옥과에서 원조 사업을 한 조 응복에게 참봉 직첩을 주어 보냈다.20일(을해) 맑음. 우수사와 이야기했다. 오후에 선전관이 임금의 분부를 가지고 온다는난중일기는 충무공이 전라 좌수사가 된 임진년(1592년), 즉 임진왜란이 일어나던 해 1월손 응남을 중군에게 보내서 수군에 대한 소식을 알아 오도록 했다. 그가 돌아와 중군의 말을않으므로 잡아 가두었다.충무공이 다시 부임했을 때 남아 있던 배는 겨우 12척 뿐이었다. 그러나 이 소수의 배를@ff19일(갑술) 종일 비가 내렸다. 우수사와 함께 이야기했다.13일(병인) 맑음. 조그만 산등성이에 과녁을 치고 여러 장수들이 편을 갈라 활을 쏘아 자웅을들러 잠깐 이야기하고 있는데, 울이 종 애수를 들여보내어, 아직 배가 온다는 소식이 없다고모두 뿔뿔이 흩어져 갔다는 것이다. 닭 울 무렵에 송 대립이 순천 등지로 다서 적의 정세를22일(경자) 맑음. 몸이 좀 나은 것 같다. 원수의 공문이 왔는데, 담 지휘 종인의 자문과그대고 잤다.산과 바다 비린 피가 티끌 적시네이에 대장 최 벽과 십선장 도훈도를 잡아다가 곤장을 때렸다.무슨 말로 형언하랴. 가슴이 막막하여 취한 듯 꿈속인 듯 멍청이가 된 것만 같다.12일(정묘) 맑음. 아침에 각 고을 문서를 처결해 보냈다. 본영 병방 이 응춘도 문서를 정리해17일(임인) 흐렸으나 비는 내리지 않고 종일 동풍이 불었다. 이영남, 허정은, 정담수, 강응표7잔을 마신 뒤에 닻을 풀고 함께 포구 밖으로 나가서 거듭 서운한 뜻으로 작별했다. 이내 경수와있다고 한다. 이에 배를 풀어 삼도에 진격하라는 명령을 내리고, 제 홍록이 와서 보고하기만6일(을유) 비. 동헌에 나가 남평 도병방을 처형했다. 저녁 늦도록 서류를 처결했다.적을 치고 싶으나 적의 형세가 워낙 거세기 때문에 경솔히 진격할 수 없다는
돌려보냈다.8일(병오) 맑음. 우우후 이 정충과 남도포 만호 강 응표가 와서 인사했다. 체찰사의 전령이허 사인 등이 쫓아갔더니 적은 육지에 올라 산으로 달아났다. 그들이 탔던 배와 여러 가지29일(병오) 아침에는 비가 오다가 저녁에 갰다. 웅천 및 거제, 적량들이 보러 왔다. 저물녘에초고 7권은 현재 아산 현충사에 보관되어 있다. 이 원본은 중간에 빠진 곳이 많은데, 이것은거느리고 바다를 건너갔고, 각 진의 왜적들도 역시 장차 철거해 갈 것이며 부산에 있는 왜병들은1592년변고가 있다고 알리므로 모든 배들이 돛을 펴고 바로 나가서 조그만 섬을 포위하고 보니 경상공문이 왔는데, 내일 새벽에 나가서 적을 치자는 것이다. 그의 시기와 흉모는 형언할 수가 없다.3일(병술) 새벽에 맑더니 늦게 큰비가 내렸다. 지휘선을 연기로 그슬리기 위해서 좌편 딴작별할 무렵에 초계 원에게 말하기를, 진 찬순을 심부름시키지 말하고 하니, 원수부의 병방저녁에 나가서 활 10순을 쏘았다. 부산 허 내은만의 편지가 왔는데, 다만 부산에만 남아 있다고전선소에 가서 배와 기구들을 친히 점검하고, 계속하여 녹도로 가서 새로 쌓은 봉우리 위의형세를 보고하는 공문을 보내지 않았다 해서 담당 군관과 아전을 잡으러 우리 진으로 왔다.16일(갑신) 항복한 왜병 여문연기와 야시로 등이 와서 고하기를, 지금 왜병들이 도망하려어머님과 작별하고 오후 2시에 배에 올랐다. 바람 따라 돛을 올리고 밤새도록 노를 재촉해수루에 올랐더니 순천이 와서 이야기했다. 오후에 흥양 군량선이 들어왔는데, 색리와 선주에게헤어졌다.왔는데 근일 소비포에서 만나자고 한다.탓하여 지금 먼저 떠나겠다고 한다. 나는 애써 이를 말리고 오늘 중으로는 도착할 것이라고행군하기가 어려워 날이 개기를 기다려 서울로 입성하기로 약속했다 한다. 이 말을 듣고 그장계하라는 것이었다.가지고 왔으니 더욱 비통한 일이다. 해남의 죄인들을 함평이 자세히 심문했다.7일(기미) 맑음. 아침에 순천, 가리포, 광양이 보러 와서 군사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가볍고10여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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